2021년 12월. 드디어 한국으로 돌아왔다.
미국에서 약 5년 동안 연구원의 삶을 살았다. 2018년 겨울에 한 번 한국을 방문 한 이후로 한국 땅을 처음 밟았으니 3년 만이었다. 코로나19로 한국 방문이 어려워지면서 그리움만 커져갔고, 견디기 힘들 때쯤 운 좋게도 좋은 실적을 얻었고 한국 회사로 이직을 하게 되었다.
한국으로 들어오는 것이 결정된 순간부터 정리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았지만, 마음이 들뜨고 신났다. 끝이 나지 않을 것 같던 미국 생활이 잘 마무리하고,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았던 순간들이 잊히고, 뭐든지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그 기분. 내 성격상 오래가지 못할 거란 걸 알기에 잠깐이나마 즐기기로 했다.
학교에서 회사로 옮긴다는 것은 또 다른 도전이었고, 잠깐만 긴장을 늦추면 걱정이 앞섰다. 그때마다 '미국에서도 적응했는데, 회사라도 한국이니깐 괜찮아.', '영어에 고통받지 않고, 하고 싶은 말은 얼마든지 표현할 수 있잖아.' 라며 나를 다독였다.
2022년 1월 첫 출근을 하고, 벌써 2달이 지났다. 한국에 있다는 것만으로 신났던 마음이 조금 가라앉았다. 첫 한 달은 업무 파악으로 끝난 것 같다. 그래도 경력직인데 뭐라도 보여주고, 성과가 있어야 할 것만 같았다. 새로운 실험을 시작했지만, 3월이 된 지금도 뚜렷한 결과가 없음에 다시 쉽게 좌절감에 빠진다.
쉽게 무너지지 않으려고 처음 미국으로 갔을 때를 떠올렸다. 'Hi' 조차 말하기 어려웠던, 'How's it going?'이란 질문에 'I'm fine. thank you.'조차 말하지 못해 어버버 거렸던 그때 (이후엔 Good, how are you?를 입에 붙였다). 아무도 압박하지 않음에도 잘리진 않을까 걱정을 하며, 빨리 적응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지도 교수님께서는 시간이 해결해주는 일도 있기에 조급할 필요는 없다고 말씀하셨지만, 조급한 마음을 가라앉히는 건 쉽지가 않다. 말도 잘 못하는 데 실험이라도 잘 해내고 싶었다. 내 마음과 다르게, 한국에서 너무나 쉽게 했던 실험조차 잘 안되었다. 환경이 바뀐다는 것은 그렇게나 큰 일이다. 일상생활이 안정되고, 연구실에 적응을 한 것은 6개월에서 1년 정도 이후였던 것 같다.
사실 이 적응기간은 그냥 나의 느낌과 기분일 뿐이다. 누군가에게 무엇이 어디있는 지 물어보지 않고, 일을 독립적으로 할 수 있게 되었을 때 나는 '적응'이 되었다고 이야기했다. 연구실이 익숙하고 모든 게 자연스러워진 건 2년은 지나서였던 것 같다. 하지만 그 누구도 내가 2년 동안 적응 못했다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내가 할 일을 해내기 때문이다. 이직을 하고 2 달이 지난 지금도, 실험 자재 위치 하나하나, 물품 주문을 포함한 행정 처리를 일일이 물어보아야 한다. 아직 적응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함께 일하는 팀원들은 나에게 적응이 참 빠르다고 이야기해준다. 내가 느끼는 것과 남들이 보는 것은 언제나 차이가 난다. 팀원들의 칭찬에 기대고, 실수투성이인 것은 환경이 바뀌었기 때문이라고 자기 위안을 한다.
시간이 해결해 주는 일이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그래도 내가 적응이 되었다고 느꼈을 때가 빨라지려면 그만큼의 노력이 필요하겠지. 처음에 하는 실수를 너무 마음에 담아두지 말고, 더 많이 배우면 적응 기간이 짧아질 거라 믿는다. 회사에서 내가 하는 모든 일들이 자연스러워지는 날이 곧 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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