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기타

해외 포닥 후 취업

은그릇 2025. 2. 26.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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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쓴 글에서도 밝혔듯이, 나는 생명과학 분야를 전공했고 국내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후 약 5년 정도 해외 포닥을 했다. 학위 과정 중에는 박사를 받고 무엇을 할지, 해외 포닥을 하면서도 이후엔 어떤 직업을 가져야 하는지 항상 고민이었다. 내가 연구를 하고, 박사를 받다 보니 주변에서는 당연히 목표가 '교수'인 것처럼 생각하는 것 같았다. 물론 교수라는 직업을 가지면 좋겠지만, 나에겐 최종 목표는 아니었다. 연구하는 모두가 교수가 될 수 있는 건 아니니깐. 많은 고민이 있었고, 포닥 중 논문이 나오면서 이 계약직 '포닥'을 끝내야겠다 마음을 먹었을 때를 떠올리며 글을 남긴다.
 


 

1. 교수

생명과학 분야에서는 박사 후 바로 교수가 되는 경우가 거의 없다. 대부분 박사 후 과정 (Post-doc, 포닥)에서 논문 실적을 더 쌓은 후 임용 시장에 뛰어들게 된다. 논문 실적도 세부 분야에 따라 달라지기 마련이지만, '서류 통과'가 될 정도의 실적을 가져야 한다 (최근 3년 간 1 저자 3 개 이상, 4년 간 1 저자 3 개 이상 등). 그 정도의 실적을 가지고 면접을 볼 수 있게 된다면, 그때부턴 강의, 영어 강의, 연구 계획 등 다양한 발표와 면접 파티를 하게 된다. 면접은 보면 볼수록 는다고 하지만, 기회가 많지 않을 수 있으니 모두가 간절함으로 무장하여 준비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면접을 보는 정도가 되면 '주차 자리 찾기'에 비유되는 상황이 된다. 아무리 내가 실적이 뛰어나도, 딱 맞는 학과에 TO가 없다면 지원을 해볼 수 조차 없다 (주차장 만차). 그래서 교수가 된 분들이 '운이 좋았다'라고 이야기하거나, 주변에서 '관운'이 필요하다는 말이 나온다.
나 같은 경우는 서류 통과하기엔 논문 실적이 부족했다. 그 부족한 논문 실적을 채우자니 2-3년의 시간이 더 필요했다. 하지만 최근 3-4년 간 3 편이 된다는 보장이 없었다. 시간을 더 투자하여 실적을 쌓는 것보다, 당장 내가 자리를 잡는 것이 더 나을 것이라 판단했다.

 

2. 해외 기업

미국에서 연구원 생활을 하고 있었기에, 해외 기업으로 가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내가 해외 포닥을 하며 했던 일들은 사실 학교에서보다는 기업에서 더 관심을 가질만한 일이었다. 처음에 학계에 남는 방법만 생각했을 때는 속이 답답할 정도로 답이 없었는데, 회사로 가려고 하니 오히려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즈음에 미국에 취업한 사람들을 만나거나 정보가 있을 만한 사람들을 만나면 미국 회사는 어떻게 가는지 묻고는 했다. 그러면서 알게 된 것은 '네트워킹'의 중요성. 우리나라의 인맥과는 다른 의미이다. 학회 같은 곳에서 연구에 관한 의견을 나누고, 인스타그램이나 링크드인을 꼭 연결하라는 조언을 들었다. 지인이나 이렇게 네트워킹으로 알게 된 사람들에게 추천을 받으면, 조금 쉽게 면접의 기회를 얻을 수 있다. 해외 기업의 면접은 또 만만치가 않은 게, 전화 인터뷰, 대면 인터뷰 등 프로세스가 길다. 박사 이상의 경력직을 뽑는 자리이기 때문에, 전화 인터뷰를 통과하면 교수 임용처럼 하루 종일 면접을 보게 된다고 한다.
나의 경우는 이제 방법을 좀 알 것 같아서 '네트워킹'이란 걸 해보려고 할 때 코로나19 팬데믹이 왔다. 당장 사람을 만날 수 없으니 세미나를 보고 알게 된 졸업생들을 링크드인 연결을 해보며 네트워킹을 해보려 노력했다. 그리고 추천은 없지만, 다양한 기업에 지원을 해보았다. 수 십 군데 지원했는데, 한 곳 정도 전화 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 추천이 없어서도 있지만, 그들이 원하는 정보를 내가 서류에서 다 보여주지 못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지나 보니 자기소개서나 경력기술서를 어떻게 쓰는지가 서류 통과에 중요한데, 나는 그냥 내 이력만 써서 보낸 수준이었다.
그 당시에도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면서, 영주권이나 시민권 없으면 미국 취업이 어렵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아마도 트럼프 2기가 시작된 지금은 더 어려워지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그럼에도 회사는 원하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영주권을 서포트하면서 데려갈 것이다.

 

3. 국내 기업

앞서 이야기했듯, 나의 포닥 때 연구 주제는 기업에서 하는 일과 유사했다. 덕분에 한국 회사에 지원하게 되었을 때, 면접 기회가 더 많아졌다. 한국의 기업들도 글로벌로 진출을 해야 하다 보니 해외 경험이 있는 사람에게 관심이 많았다. 마지막으로 한국으로 가기로 마음먹은 기업은, 내가 직접 회사 홈페이지에 뜬 공고를 보고 지원을 했다. 아직 코로나19로 한국에 가면 자가 격리를 해야 되는 상황이기도 했고, 1, 2차 면접 모두 줌으로 볼 수 있어서 시간에 대한 부담이 없어 좋았다. 다른 방법으로는 전공과 관련된 한국인 협회 또는 학회에서 Job fair를 하는 경우가 있다. 나도 Job fair를 통해 좋은 기회를 얻기도 했는데, 일정이 맞지 않아 중간에 포기했다. 임원진 면접은 직접 한국에 와서 봐야 한다거나, 합격하면 바로 한국에 들어와야 되는 상황이 있었다.  

 

4. 연구소

기초 연구를 전공으로 연구를 하다 보면, 이 연구를 놓지 않을 수 있다. 그럴 때 정출연 연구소나 비영리 연구소도 좋은 선택지가 된다. 이런 연구소에 대한 정보가 없어, 정출연 연구소들의 취업 세미나나 상담도 받아 보았었다. 각 연구소에 따라 경력에 따른 직급과 연봉 모두 다 달랐다. 그리고 연구소 내의 분위기나 워라밸은 역시 팀바팀 부바부 인 것 같았다. 요즘은 박사 받고, 포닥하고 나서도 좋은 연구소의 선임 연구원 되는 게 쉬운 일이 아닌 듯했다.


나는 박사 학위를 받고, 해외 포닥을 하는 과정에서 교수가 되거나 학계에 남는 것보다는 회사에 취직하고 싶은 생각이 더 많았다. 연구는 내가 좋아서 시작했지만, 이미 너무 지쳐 '내가 하고 싶은 나의 연구'에 대한 아이디어도 없었다. 또, 내가 쌓아온 커리어가 학교보다는 회사에 더 적합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언제나 영어가 발목을 잡는 느낌이어서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시간이 지나 에너지가 충전되고 돌아보니, 내가 너무 지쳐 있어서 단편적으로 판단했던 것도 같다. 회사에 적합한 연구였지만, 내가 학계에 남겠단 생각을 했다면 포닥 때 사이드 프로젝트를 해서 논문을 더 냈어야 했다. 그 당시에 직무가 적합한 자리에 지원하면, 한국 기업에서 나에게 관심을 가졌었다. 그렇다면 조급해하지 말고 더 좋은 조건을 가진 곳을 기다렸어도 되지 않았나 생각도 든다.  이건 불안한 상황이 다 지나고 안정감을 가진 지금에야 할 수 있는 생각이다. 그때의 선택으로 난 또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되어서 후회하지 않는다.

박사 과정과 포닥일 때 너무 많은 불안감을 안고 살았다. 모두가 그렇진 않겠지만, 그런 불안감을 가지고 검색해 이 글을 보는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정보가 되었으면 좋겠다. 각자의 우선순위에 따라 각자 최선의 선택을 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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